서기 974년,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조빈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남당(南唐) 정벌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깁니다.
출정 직전, 태조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황실의 칼'을 조빈에게 하사하며 엄숙하게 선포했습니다.
“부장급 이하의 자들 중 누구든 내 명령에 불복하거나 군기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이 칼로 즉각 처형해도 좋다.”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조빈. 그런데 그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뜻밖의 요청을 합니다.
당시 조정에서 모두가 꺼리던 인물, 천친좌(天秦紙)라는 장군을 자신의 부대로 전출시켜 달라는 것이었죠.
소문 속의 천친좌는 그야말로 '기피 대상 1호'였습니다.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것은 기본이고, 야심이 지나친 데다 무엇보다 남의 뒷담화와 모략을 즐기는 고약한 습성을 가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측근들은 경악했습니다. "장군님, 왜 하필 그 독사 같은 자를 옆에 두려 하십니까? 평온한 원정길이 지옥이 될지도 모릅니다!"라며 만류했죠.
조빈은 당황하는 부하들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혜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 남방 원정은 짧은 싸움이 아니다.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야. 우리가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칼날의 예리함보다 '조정의 흔들림 없는 지원'이다."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천친좌 같은 부류를 보아라. 그를 이곳에 두고 가면 그는 분명 빈집에서 우리를 헐뜯고, 사소한 실수조차 모략으로 바꾸어 황제 폐하의 귀를 어지럽힐 것이다.
전선에서 피 흘리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화살을 쏠 자가 바로 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 눈앞에 두고 감시하는 것."
조빈의 전략은 명확했습니다. 그를 곁에 두어 딴마음을 품지 못하게 감시하되, 적재적소에 임무를 주어 공을 세우게 함으로써 그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이었죠. 그리고 조빈은 덧붙였습니다.
"내게는 황제의 검이 있지 않은가. 그가 선을 넘는 순간,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예로부터 '정(情)'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뒷담화'나 '파벌' 문제로 몸살을 앓기도 하죠.
조빈의 대처가 유독 빛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착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잘라내거나 외면하는 데 급급합니다. 하지만 조직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이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조빈은 '소인배(小人輩)'라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덕 있는 사람 곁에는 반드시 옹졸한 사람도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배척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치환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적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적입니다. 나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을 차단만 할 것이 아니라,
적당한 업무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소인배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는다고 느끼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조빈처럼 그들에게도 작은 성과를 맛보게 해준다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포용은 호구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조빈이 천친좌를 데려올 수 있었던 자신감은 '황제의 칼'이라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절하되, 무례함이나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처럼 살 수 없습니다. 때로는 흙탕물도 받아낼 줄 알아야 큰 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
조빈 장군은 천친좌라는 '독'을 군대라는 '해독제' 속으로 끌어들여 전체 원정의 안전을 꾀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빌런'들. 그들을 보며 분노하기보다 "저 사람을 내 통제하에 두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소모를 멈추고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조빈처럼 그를 당신의 큰 그림 안의 한 조각으로 배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진정한 승부사는 적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적조차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자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