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가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정면으로 반박하자니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호구'가 되는 기분이죠.
특히나 그 상대가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갑'의 위치라면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평소 제자를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살던 박 영감은 툇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을 쓸고 있는 제자 철수를 불렀습니다.
"철수야, 이 빈 주전자를 가져다가 저 아래 주막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좀 받아오너라."
철수는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수중에는 단돈 백 원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스승님이 돈을 주실 거라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죠. "스승님, 술을 사려면 돈을 주셔야지요."
그러자 박 영감은 기다렸다는 듯 껄껄 웃으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아! 돈이 있으면 세상 어떤 바보가 술을 못 사 오겠느냐? 돈 없이 술을 받아와야 진정한 실력자지. 그게 바로 공부의 완성이다. 어서 다녀와!"
이것은 명백한 괴롭힘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돈 없이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약탈이거나 구걸인데, 스승은 그것을 '능력'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해 제자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죠.
철수는 잠시 멍하니 스승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라고 대들었다면 돌아오는 건 불호령과 '공경심 부족'이라는 낙인뿐이었을 겁니다.
철수는 일단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죠.
'스승님의 논리가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 논리로 대접해 드리는 게 예의겠지.'
철수는 빈 주전자를 들고 주막 방향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박 영감은 내심 고소해하며 생각했습니다.
'녀석, 한참을 쩔쩔매다가 빈손으로 와서 잘못했다고 빌겠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까요? 철수가 땀을 닦으며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묵직해 보이지 않는 주전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철수는 공손하게 스승 앞에 주전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여기 말씀하신 최고의 막걸리를 담아왔습니다. 어서 시원하게 한잔하시지요!"
박 영감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설마 진짜로 외상을 달고 왔나?' 싶어 얼른 주전자를 들어 잔에 따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주전자는 비어있었고 찰랑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엔 뜨거운 열기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박 영감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놈아! 주전자가 텅 비어있지 않느냐! 술이 없는데 뭘 마시라는 거냐? 나를 놀리는 게냐!"
이때 철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이구, 스승님. 주전자에 술이 가득 차 있다면, 이 세상 어떤 바보가 술을 못 마시겠습니까?
술이 없는 주전자로 술을 드셔야 진정한 스승의 경지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박 영감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방금 자신이 철수에게 했던 "돈이 있으면 누가 못 사오냐"는 논리를, 제자가 "술이 있으면 누가 못 마시냐"로 완벽하게 되받아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억지가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오자, 스승은 화를 낼 명분도, 꾸짖을 근거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박 영감은 껄껄 웃으며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래, 내가 졌다! 가서 제대로 사 오너라."
논리에는 논리로, 억지에는 위트로: 상대가 상식 밖의 요구를 할 때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싸움이 됩니다.
하지만 상대의 논리를 그대로 빌려와 되돌려주면, 상대는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게 됩니다.
잠시 멈추고 '질문'을 바꾸기: 철수는 "어떻게 돈 없이 술을 사지?"를 고민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스승의 논리가 틀렸음을 증명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이열치열의 품격: 불길을 잡기 위해 더 큰 불을 놓듯, 상대의 무례함을 유머라는 더 높은 차원의 공격으로 잠재우는 것이 가장 세련된 복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