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종종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한 명의 무례한 운전자를 보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을 보고 그 기업 전체를 매도하기도 하죠.
어느 마을에 선교사라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양계장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다 똑같아"라며 기회만 생기면 선교사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일종의 정의구현이라 믿었죠.
그러던 어느 날, 두 명의 선교사가 그의 양계장을 찾아와 닭 한 마리를 사고 싶다고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속으론 탐탁지 않았지만, 손님을 쫓아낼 순 없기에 주인은 퉁명스럽게 내뱉었습니다. "저기 널린 게 닭이니 마음대로 골라보쇼."
수천 마리의 건강한 닭들이 가득한 농장을 한참이나 둘러보던 두 선교사. 그런데 그들이 최종적으로 집어 든 닭을 본 주인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들이 고른 것은 깃털은 다 빠져 듬성듬성 살집이 보이고, 다리까지 저는 가장 볼품없는 수탉이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주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왜 하필 그딴 놈을 고르는 거요? 먹을 것도 없겠구먼!"
그러자 선교사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닭을 우리 숙소 앞마당에 키우려고 합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이 못생긴 닭을 보고 '아, 저게 바로 당신네 농장에서 온 닭이구나'라고 알 수 있게 말이죠.
당신 농장을 홍보해 드리고 싶어서요."
주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건 안 되지! 우리 농장엔 통통하고 건강한 닭이 수천 마리인데, 딱 저놈 하나만 싸우다가 저 모양이 된 거란 말이오.
저 닭 한 마리만 보고 사람들이 우리 농장 닭이 다 저렇다고 생각하면 나에겐 너무 불공평한 처사 아니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선교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습니다.
"맞습니다, 사장님. 바로 그겁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실수하는 몇몇 선교사의 모습이 우리 전체를 대변하는 대표자로 여겨지는 건, 저희에게도 참 불공평한 일이지요."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성급한 일반화'의 함정에 빠집니다.
99마리의 건강한 닭보다 1마리의 병든 닭이 더 눈에 띄듯, 타인의 단점 하나가 그 사람의 인격 전체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편향된 시각'일 뿐입니다.
선교사들은 화를 내거나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양계장의 평판'을 이용해 스스로 모순을 깨닫게 했죠.
상대의 방식을 역이용해 품격을 지키면서도 논리적으로 승리하는 기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 내가 지금 '다리를 저는 닭 한 마리'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남이 나를 단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길 원치 않는다면, 우리 역시 타인을 넓고 깊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