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대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라고 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아니오"라고 하자니 뒷감당이 두려운 그런 순간들 말이죠.
200여 년 전, 중국 청나라의 황제 건륭제와 한 노승 사이에서도 이런 '피 마르는 문답'이 오갔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면서도 나를 높이는 '처세의 정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륭제는 정체를 숨기고 남쪽 지방을 유람하던 중 닝보의 '천통사'라는 절을 찾았습니다.
주지였던 원지 선사는 황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홀로 산기슭까지 내려가 정중히 맞이했죠.
하지만 콧대 높은 황제는 심술이 났습니다.
"내가 온 걸 알면서 왜 승려들을 다 끌고 나와 성대하게 맞이하지 않았느냐?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자칫하면 '불경죄'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 원지 선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답합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지금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살피러 오신 것이 아닙니까? 제가 소란을 피우면 구경꾼이 몰려들 테고, 그것은 오히려 폐하의 안위와 여정을 방해하는 일이 될까 저어되어 홀로 나왔사옵니다."
황제의 명분을 세워주면서 자신의 행동을 '충성심'으로 포장한 기막힌 답변이었습니다.
황제와 선사가 대웅전에 들어서자, 인자하게 웃고 있는 미륵불이 보였습니다. 건륭제는 다시 한번 선사를 시험하기 위해 물었습니다.
"대승이여, 저 부처는 대체 왜 저리 실실 웃고 있는 것인가?"
원지 선사는 자신을 낮추며 먼저 답했습니다.
"저 웃음은 저처럼 보잘것없는 중이 절간에서 아무 공적도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것을 비웃는 웃음입니다."
황제는 속으로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습니다.
"허허, 저 부처는 나를 보고도 웃고 있구나. 그럼 나도 너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냐?"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황제를 비웃는다고 하면 대역죄요, 황제를 높이자니 앞선 자신의 논리가 깨지는 상황. 이때 원지 선사의 '기발한 답변'이 나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미소는 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폐하를 향한 미소는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그 노고에 감탄하여 짓는 자애로운 미소입니다.
속이 좁아 남을 해치려는 보통 사람들의 비수 같은 미소와는 근본이 다르지요."
원지 선사의 답변은 단순히 아부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재정의(Reframing)'의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황제의 공격적인 질문을 '백성을 향한 헌신'이라는 키워드로 덮어버렸습니다.
무시당했다는 황제의 불만을 '배려'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날 선 질문에 똑같이 날을 세우지 않고, 부드러운 언어로 상대의 무기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도 건륭제 같은 '답정너' 상사나 무례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 원지 선사의 지혜를 기억하세요.
직설적인 대답이 화를 부를 것 같을 때는 상황을 한 단계 높은 가치(배려, 충성, 공익 등)로 연결해 답변해 보세요.
유연한 언어는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