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평화로운 숲속, 이곳에는 종을 초월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주인공은 매끈한 비늘과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는 뱀 ‘스네이크’와, 단단한 등껍질 속에 속 깊은 마음을 감춘 거북이 ‘부기’입니다.
스네이크는 숲속에서 소문난 순정남이었습니다.
그는 부기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에서 여유를 발견했고, 딱딱한 등껍질을 보며 세상 그 어떤 풍파도 막아줄 것 같은 든든함을 느꼈죠.
스네이크는 매일같이 부기의 앞길에 핀 꽃향기를 맡으며 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은 그리 쉽게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스네이크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이슬을 모아 부기 앞에 무릎을 꿇고(사실 뱀에게 무릎은 없지만, 마음만큼은 굴복했다는 뜻입니다) 진심을 전했습니다.
"부기야, 네 등껍질 위의 먼지 하나까지 내가 다 핥아줄게. 나랑 같이 살자!"
하지만 돌아온 것은 따뜻한 포옹이 아닌 차가운 침묵이었습니다.
부기는 곤란한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뗐습니다. "미안해, 스네이크. 우린 함께할 수 없어."
이 청천벽력 같은 거절에 스네이크는 숲이 떠나가라 포효했습니다.
사자도 아닌 뱀이 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소리였죠. "왜! 대체 왜! 내 사랑이 부족한 거야?
아니면 내가 다리가 없어서 그래? 왜 이런 잔인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거냐고!"
그의 절규는 숲속의 모든 산짐승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볼 만큼 처절했습니다.
스네이크의 눈에서는 피눈물 같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스네이크의 처절한 외침에 부기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어머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한국의 정서가 듬뿍 담긴, 이른바 'K-어머니'의 현실 조언이었죠.
"우리 엄마가 그랬어. 사람이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특히, 조끼 하나 살 돈도 없어서 맨몸으로 다니는 사람(뱀)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단 말이야!"
스네이크는 멍해졌습니다. 조끼라니? 애초에 뱀은 팔이 없어서 조끼를 입을 수 없는 신체적 구조를 타고났습니다.
하지만 부기의 논리는 확고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조끼'란 단순히 옷 한 벌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성실함'과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적 규범'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조끼 하나 못 걸칠 정도로 경제력이 없거나, 혹은 남들 다 입는 옷 한 벌 챙겨 입을 눈치조차 없는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집 가훈이야. 미안해, 넌 너무... '올 누드'잖아."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씁쓸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뱀은 자신의 본질(다리 없음, 비늘 몸)을 사랑해달라고 외치지만,
거북이의 세계관(등껍질이라는 집이 필수인 세계)에서는 '조끼'조차 없는 뱀의 모습이 그저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죠.
사실 이 이야기에는 숨겨진 반전이 있습니다. 거북이가 말한 '조끼'는 사실 '방탄조끼'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등껍질이 없는 연약한 뱀이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장비(조끼)도 없이 사랑만으로 덤벼드는 것이, 거북이 입장에서는 무책임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나라 정서상 '옷차림'은 곧 '대접'입니다.
명절에 친척 어른들을 뵙는데 조끼는커녕 셔츠 하나 안 걸치고 나타난 사윗감을 반길 장모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북이 어머니의 가르침은 결코 물질 만능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도 최소한의 외피(禮)가 필요하다'는 뼈 때리는 조언이었던 셈입니다.
사랑에 실패한 스네이크는 그날 이후 숲속 뜨개질 공방에 등록했다는 후문이 들려옵니다.
팔이 없으니 입으로 바늘을 놀려가며 자신만의 '롱 조끼'를 짜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비록 신체적 한계는 있을지언정, 사랑하는 그녀의 '어머니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한 눈물겨운 사투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닫습니다.
진심만으로 모든 것이 통하는 시대는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그것이 비록 조끼 한 벌일지라도)를 이해하고 노력하려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조끼'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혹시 상대는 방한 조끼를 원하는데, 본인만 뜨거운 열정의 민소매를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