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삶의 이야기

어느 화가의 황홀한 몰입

등록일: 2026-03-09
어느 화가의 황홀한 몰입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던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 한 화가가 거대한 벽화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먹고 자는 것조차 잊은 채 매달려온 작업이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붓 터치를 마친 그는 땀을 닦으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한 걸작을 온전히 한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완벽했습니다. 빛의 질감과 색채의 조화는 화가 스스로도 감탄할 만큼 황홀했습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습니다.

조금 더 멀리서 보면 더 완벽할 것 같았죠. 하지만 그가 취해있던 그 미적 황홀경 뒤편에는 차가운 추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가 선 곳은 단상의 가장자리였습니다. 단 한 걸음. 그 가느다란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그는 수십 미터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질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눈앞의 '그림'이라는 세계에 갇혀, 등 뒤의 '절벽'이라는 현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비명 대신 붓을 든 조수의 선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젊은 조수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안 돼요!", "멈추세요!"라고 소리치려던 조수는 찰나의 순간 입을 닫았습니다.

만약 지금 소리를 지른다면 어떻게 될까? 극도로 몰입해 있던 화가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고, 그 반작용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뒷걸음질 치며 중심을 잃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공포는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마련이니까요.

조수는 비명 대신 가장 잔인하면서도 명석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는 바닥에 놓인 커다란 붓을 집어 들더니, 화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완성한 벽화의 정중앙을 향해 거칠게 물감을 내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그 아름다운 그림 위를 덧칠해버렸습니다.


깨어진 환상, 그리고 되찾은 생명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그림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본 화가는 경악했습니다.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그는 본능적으로 그림을 향해, 즉 절벽 반대 방향인 안쪽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화가는 조수의 덜미를 잡으려다 멈췄습니다. 조수는 바닥에 주저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화가가 방금 서 있던 단상의 끝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화가는 깨달았습니다. 방금 자신이 탐닉하던 그 완벽한 아름다움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음을, 그리고 조수가 망가뜨린 것은 '그림'이 아니라 바로 '죽음의 경로'였음을 말입니다.

그는 떨고 있는 조수를 말없이 껴안았습니다. 화가에게는 다시 그릴 그림이 있었지만, 조수에게는 다시 얻을 수 없는 단 한 명의 스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빠른 판단력'이 단순히 계산이 빠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이를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지혜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이 말은, 더 큰 가치를 위해 눈앞의 소중한 것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情)이 많고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갈 때 흔히 말로 설득하려 하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무언가에 눈이 멀어 있거나(강박), 감정적으로 극도로 고조된 상태일 때 정공법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몰입의 함정과 '눈치'의 미학 한국어에서 '눈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지능'을 뜻합니다.

조수는 스승의 심리 상태와 물리적 위치를 동시에 파악하는 최고의 '눈치'를 발휘했습니다. 상대가 어디에 미쳐있는지 알 때, 그 미쳐있는 대상을 타격함으로써 정신을 번뜩 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이들의 소통법입니다.


고함보다 강한 침묵의 행동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나 조력자는 상대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충격 요법'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논리 자체를 무너뜨려 상황을 재설정(Reframing)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움'보다 어려운 '비움'의 결단 화가는 채우는 것에 집중하느라 비우는 법(뒤를 보는 법)을 잊었습니다.

조수는 채워진 것을 비움(파괴)으로써 생명을 채웠습니다. 우리네 삶에서도 주식, 부동산, 커리어, 혹은 특정한 관계에 매몰되어 '한 걸음만 더'를 외치다 벼랑 끝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정보나 응원이 아니라,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을 과감히 훼손해서라도 나를 끌어내 줄 '불편한 진실'일지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이 위험한 확신에 빠져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같이 소리를 지르며 위태로운 뒷모습을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가 보고 있는 캔버스를 찢으시겠습니까?

진정한 판단력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멈추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서 나옵니다.

때로는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 탑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누군가를 구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 소중한 누군가가 황홀한 성공이나 혹은 깊은 슬픔이라는 그림에 빠져 뒷걸음질 치고 있지는 않나요?

그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그를 현실로 불러들일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붓질 한 번'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