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선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파도를 마주하곤 합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예기치 못한 악의 앞에서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한 상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상대의 방식'을 빌려와야 하는 처세의 지혜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 평생을 성실하게 장사해 온 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황에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은 평생의 노고가 담긴 금화 80개뿐이었습니다.
상인은 이 소중한 금화를 주머니에 넣고 품속에 깊이 간직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가장 방심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서 금화를 확인하던 상인을 지켜보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상인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쁜 사람아! 어떻게 처자식을 버리고 혼자 도망가려 합니까? 우리 생활비까지 몽땅 들고 가버리면 우리는 어찌 살란 말입니까!"
주변의 시선은 순식간에 차가워졌습니다.
당황한 상인이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여인의 연기는 치밀했습니다.
미리 교육받은 아이들까지 달려와 상인의 다리를 붙잡으며 "아빠,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순간, 진실은 거짓의 함정에 완전히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관가로 끌려갔습니다.
판사 앞에서 상인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이들의 눈물 어린 연기와 여인의 절박한 목소리 앞에서 판사는 심증을 굳혔습니다.
판사는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나려거든,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다해야 한다.
금화 80개를 모두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고 떠나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라."
상인은 절망했습니다.
평생을 일군 재산을 눈앞에서 강탈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금화 80개를 내어주고 빈털터리가 되어 법정을 나왔습니다.
억울함에 가슴을 치며 거리를 배회하던 상인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직한 호소는 거짓을 이길 수 없다. 저들이 만든 가짜 현실 속으로 직접 들어가야만 승산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 날, 상인은 다시 법정을 찾아가 판사에게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먼 길을 떠나는데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하니, 장성한 큰아들만은 제가 데려가 가업을 잇게 해주십시오.
나머지 아이들과 금화는 아내에게 맡기겠습니다."
판사는 이를 합리적인 요청이라 여겨 허락했습니다. 여인은 당황했습니다.
상인이 가리킨 '큰아들'은 사실 여인의 진짜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생판 남인 상인이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 험한 타지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여인을 덮쳤습니다.
여인은 상인을 쫓아와 애원했습니다. "제발 내 아이만은 돌려주세요. 그러면 그 금화 80개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상인은 그제야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잃어버린 금화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스스로 판사가 내린 '부부'라는 가짜 관계를 부정하게 만듦으로써, 상인은 자신의 진실을 증명하는 대신 상대의 거짓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내 힘을 소진하기보다 상대의 힘이나 방식을 역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일컫습니다.
상인의 대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처세술의 가치를 시사합니다.
첫째, 악의 앞에서는 논리보다 '심리'가 우선입니다. 상대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공격해올 때, 똑같이 상식과 도덕을 지키며 대응하는 것은 때로 무력할 수 있습니다.
상인은 여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식'이라는 약점을 파고들어, 그녀가 스스로의 덫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거울 치료'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방식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상대의 수법을 그대로 미러링(Mirroring)하여 되돌려주는 것은, 단순히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일깨워주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됩니다.
셋째, 유연함이 곧 강함입니다. 상인은 처음엔 '나는 결백하다'는 고집(강함)으로 맞섰으나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래, 내가 남편이다'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발휘했을 때 비로소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때로는 적의 진영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대담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선량함이 누군가에게는 '만만한 먹잇감'으로 비춰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선함은 무지함이나 유약함이 아닙니다. 악의를 꿰뚫어 보고, 그 악의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어할 수 있는 '영리함'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선함은 완성됩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의 부당한 요구 앞에 고통받고 있다면, 혹은 정직함이 외면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상인의 지혜를 떠올려 보십시오.
상대가 친 덫을 부수려 하기보다, 그 덫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역발상.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품격 있는 승부수가 될 것입니다.